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가 8일 배포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과정을 통해 본 건강보험 성과지표와 의사결정의 책무성 문제’(윤희숙 연구위원) 보고서는 건강보험 의사결정과정의 문제점, 특히 정부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의 역할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간 불합리한 건강보험 의사결정과정과 건정심 구조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고, 지난 5월 24일 건정심 탈퇴선언을 한 우리 협회는, 이번 KDI 현안분석에서 지적한 사항들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그간 불합리한 건강보험 의사결정과정과 건정심 구조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고, 지난 5월 24일 건정심 탈퇴선언을 한 우리 협회는, 이번 KDI 현안분석에서 지적한 사항들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이는 건정심의 핵심 문제점을 정확히 꼬집은 것으로, 우리 협회의 입장과도 맥이 통하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간 건정심은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불합리한 인적 구성과 운영으로 인해 정부가 자신의 뜻대로 휘두를 수 있는 도구로 이용돼 왔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이 달려있는 중차대한 건강보험제도를 오직 정치적 이해관계로써 결정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건정심은 그 구성부터 잘못돼 있다.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공익단체 8인 중에 의료비를 적게 쓰고자 하는 의료소비자와 이해를 같이하는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측 인사들이 포함돼 있음으로 인해 건정심의 모든 결정은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의료서비스의 비용의 문제에서는 항상 16:8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를 대표하는 위원들은 공급자 8인 중 3인에 불과하다. 즉 위원장 1인과 24명의 위원 중 3명에 불과하여 표결로 결정하는 경우, 전문가단체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묵살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정부는 공익단체 8인 중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외에도 기타 위원을 대부분 정부측 인사로 채워 넣음으로써 건정심이 정책 결정에 있어 공정함을 잃고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정부측에 유리한 인적 구성을 통해 정부는 의료의 질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표결로써 묵살하는 횡포를 저질러왔다.

이러한 구조에서 결정된 급여확대 및 보장성 강화 정책들에 대해 정부는 책임을 지지도 않으며, 건보재정 또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KDI보고서에도 “국가의 책임 하에 결정돼야 할 많은 안건들이 건정심을 통과하는 구조 속에서, 내려진 결정에 대해 설명하거나 책임지는 주체가 불명확하여 책무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분석했다.

당대 정권이 건보정책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면서도 건정심이라는 꼭두각시를 내세워 면피하기 때문에, 결국 그 정책에 대해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정치 상황에 취약해 보장성 강화 정책들을 남발했지만 건보재정은 악화됐고, 보장성 본연의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

우리 협회는 정부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건정심에 더 이상 들러리로 설 수 없어 탈퇴했고, 포괄수가제 수술 연기 철회의 조건으로 건정심 구조 개편을 주장했다. 수술 연기 철회 당시 중재역할을 했던 정몽준 의원(새누리당)도 건정심 구조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고, 합리적인 개혁을 약속한 바 있다.

이번 KDI 보고서 또한 건정심의 운영방식이 이대로 지속되기 어렵다고 내다보고 있다. 보고서는 정부와 건정심 역할의 재정립을 위해 “정부의 책임 하에 결정되어야 할 사항과, 건정심에서 보험자와 공급자 간 협상에 의해 결정될 사항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급여원칙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구체적 급여포함 여부, 의료기관 유형별 보수 등은 보험자와 사용자 간의 동등한 협상이 가능하도록 재설계된 건정심을 통하되, 정부가 정한 범위와 틀 내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보험자와 공급자간 동등한 협상이 가능하도록 건정심 재편이 조속히 이뤄지길 우리 협회는 희망한다. 노사가 1:1의 동수로 협의구조를 갖춘 노동위원회와 같이 건정심 또한 의/약/치/한 등 각 단체와 정부가 1:1의 협의체를 갖춰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건강을 위한 제도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더 이상 전문가 단체의 의견이 무시돼선 안 되며, 정치권력에 의해 좌우되어서도 안 된다.


출처 - 대한의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