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병원 창업은 업(業)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업의 정의는 곧 브랜드 정체성이며, 이것을 차별적으로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병원 브랜딩(Hospital-Branding)입니다.
풀어서 설명하면 병원 브랜딩은 잠재돼 있는 의료소비자의 마음에 병원 이미지에 대해 특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모든 과정입니다. 특별함은 곧 차별성입니다. 병의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도 진정성에 기반한 본질 위에서 기업의 제품처럼 자기만의 색깔, 특징, 이미지가 녹아 있는 브랜드로 탄생돼야 합니다. 고유의 브랜드로 다가가 국내외 환자가 직접 경험하게 하고, 그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병원 브랜드를 통해 왜 그 병원을 찾아야 하는지, 왜 그 의사에게 치료받아야 하는지 설명해주자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통해 의료소비자들은 기꺼이 자신이나 가족이 아플 때 망설이지 않고 그 병원을 찾도록 하는 게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병원의 차별적 특징이 대중 또는 의료소비자들에게 간결한 메시지로 전달되려면 특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바로 병원의 브랜드 철학인 사명(Mission), 비전(Vision), 핵심가치(Core Value)입니다. 이 세 가지는 브랜드 구조(Brand Hierarchy)에서 가장 상위에 위치해 브랜드의 모든 요소를 집약하고 있으며, 조직 수준에서 브랜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할 때 방향타 역할을 합니다. 더 집중할 수 있고,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브랜드의 나침반이며 브랜딩 과정에서 병원 구성원 모두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이며 가치관입니다.
대구에 있는 ㅁ병원은 신경과 치료 분야에서 보건복지부 지정을 받은 전문병원입니다. 1956년 한의원을 모태로 한방병원, 동서의학 협진병원을 이어오며 유서 깊은 지역 병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병원 원장은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사랑론을 인용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병원, 사람을 사랑하는 병원, 육신의 질병을 고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까지 품는 병원이 되고 싶다고 역설합니다. 그래서 병원 미션이 `생명 존중, 몸과 영혼까지 치료`입니다. 언뜻 상투적인 표현 같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넘쳐나는 병원, 넘쳐나는 의사 속에서 이 병원 의료진과 직원은 간결하고 명확한 자신들만의 미션을 병원 안에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병원의 브랜드 사명(Mission)은 우리가 `왜(Why) 존재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하려고 여기에 모여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 대답입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왜 사는가`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이것은 우리 병원이 세상에 공헌하는 큰 생각이며, 병원 구성원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미션을 세울 때는 의료진과 임직원을 이끄는 우리 병원만의 신념이 무엇인지, 우리 병원은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며, 다른 조직과 특별히 다른 점이 무엇인지 고민하면 그 실마리가 풀릴 것입니다.
브랜드 사명이 어떤 가치로 환자에게 공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의라면, 비전(Vision)은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바로 병원의 꿈 그리고 재미입니다. 비전은 브랜드 성장 전략을 통해 장기적으로 구현하려는 목표이자 병원의 미래 운명입니다. 비전을 수립할 때는 모호함을 배제하고 매우 현실적이어야 하며, 직원에게 동기부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극복 대상과 과제를 명확하게 표현해 스스로 아름다워진 미래 모습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미션과 비전이 세워지면 이제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일종의 행동강령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병원이 고객에게 제공하고 싶은 핵심가치(Core Value) 또는 핵심역량입니다. 핵심가치는 병원을 어떤(How)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며, 사람으로 치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입니다. 브랜드 신뢰를 입증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서울에 있는 한 척추관절 전문병원은 병원 이름을 모티브로 `ALL Barun Spirit(올바른 정신)`란 브랜드 모토로 다음 세 가지의 브랜드 비전을 선포합니다. 첫째, 척추관절전문 톱 5 병원으로 도약한다. 둘째, 대한민국 관절척추병원 중 구성원이 가장 자부심을 갖는 병원이 된다. 세째, 지역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병원이 된다. 그리고 `ALL`의 영문 이니셜을 각각 풀어내 Advanced(첨단기술 병원, 선도하는 병원, 연구하는 병원), Leadership(환자에 대한 책임의식, 동료간 팀워크정신, 직무에 대한 주인정신, 병원에 대한 자부심), Local Contribution(지역사회 공헌 및 대외 협력, 지역기업·단체 제휴 교류)로 명료하게 그들의 임무를 핵심가치로 정리했습니다.
장애우의 건강증진과 재활을 돕는 공공병원인 국립재활원은 국민의 건강과 삶을 구현하는 아시아 최고의 재활전문기관을 비전으로 `미래지향, 고객중심, 상호존중, 효율증대, 사회공헌`의 5가지 핵심가치를 선포했습니다. 당연해 보이는 5개 단어 속에 이 병원이 실천하려는 진심을 엿볼 수 있고, 실제 현장에서 이 핵심가치를 실천하는 노력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공공병원에서도 그들의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당에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민간 개인 병원에 그 중요성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제가 참여하는 (주)HBA 기업부설연구소는 보건복지부 지정을 받은 전문병원과 민간 종합병원 110곳의 미션, 비전, 핵심가치를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이른바 우리나라에서 유명세를 타며 잘 나간다는 병원조차 브랜드 철학을 갖추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110곳 중 25%인 25개 병원만이 비전, 미션, 핵심가치 등 3개 요소를 자체적인 탐색과 고민을 통해 병원의 고유성이 잘 드러나도록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형식적 구성요건을 갖춘 성향이 높거나 병원 목표와 진료 지향점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64곳(60%), 구성요건을 갖추지 않거나 조직 이념이 아예 적시되지 않은 경우도 21곳(20%)으로 미비한 상태였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지금 우리는 병원 브랜딩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일반 기업의 상품 브랜딩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합니다. 의료법에 환자 유인 행위가 금지돼 있고, 의료가 상품이 아닌 공공재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급격하게 변화하는 의료의 산업화 물결에서 개별 의료기관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이제부터라도 브랜드와 그에 걸맞은 철학을 갖는다는 것이 먼 이야기로 비추어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브랜드 학자는 상품(의료서비스)의 차별성이 거의 사라진 지금 시대에는 제품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품이 아니라 철학을 파는 시대라고 단언합니다. 병원도 그렇습니다.
[출처_엠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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